NO. 000021 · 애니메이션 공정론 / 09

야스히코는 왜 결과를 고치기 전에 제1원화를 그렸는가

독서 기록 불러오는 중…

1983년 극장용 애니메이션 《크러셔 조》에서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감독,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과 콘티를 맡았다. 이 작품의 작화 체제에 대해서는 야스히코 자신의 구체적인 설명이 남아 있다. 정해진 예산과 일정 안에서 적은 인원으로 장편을 만들어야 했고, 그는 젊은 작화진을 요청해 자신이 제1원화를, 이들이 제2원화를 맡는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거의 전편의 제1원화를 자신이 그렸다고 밝혔다.

《크러셔 조》의 제1·제2원화 분업은 당사자인 야스히코의 회고로 인계 구조와 작업 범위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전의 《라이딘》과 《건담》에 남은 기록만으로는 같은 체제의 운용이나 직접적인 계보를 입증하기 어렵다.

정해진 조건에서 장편의 운동을 통일하다

장편 한 편의 원화를 한 사람이 완성하려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든다. 여러 원화가가 장면을 나눠 맡으면 생산량은 늘지만, 포즈와 운동을 설계하는 판단도 함께 분산된다. 작화감독이 뒤에서 통일할 수 있으나 원화가 제출된 뒤에야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크러셔 조》의 체제는 한 컷 안의 작업을 다시 두 단계로 나눴다. 야스히코는 캐릭터가 어떤 자세를 거쳐 움직일지 러프한 원화로 먼저 정했다. 제2원화 담당은 그 그림을 설정에 맞는 형태와 동화가 사용할 수 있는 정보로 완성했다. 한 사람이 모든 완성 원화를 그리지 않으면서도 장편 전반의 운동 원안을 같은 손에서 출발시키는 방법이었다.

《크러셔 조》의 콘티와 레이아웃을 바탕으로 야스히코가 주요 자세와 연기, 운동의 원안인 제1원화를 그렸다. 젊은 원화진은 이를 받아 설정에 맞는 형태와 선, 동화 지시를 갖춘 제2원화로 완성했고, 이후 동화가 진행됐다.

제1원화는 중요한 컷만 선별해서 대신 그리는 특별 수정이 아니었다. 거의 전편의 컷에서 다음 작업자가 이어받을 운동의 골격을 제공한 일관된 앞 단계였다. 제2원화는 승인된 운동 원안을 완성 원화로 바꾸는 뒤 단계였다.

제1원화에서 먼저 결정한 것

제1원화의 러프함은 정보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선을 정교하게 닫지 않아도 캐릭터의 무게중심, 동작의 시작과 끝, 힘을 주는 방향과 주요 포즈의 관계는 들어 있어야 한다. 다음 작업자가 그 운동을 다시 발명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을 만큼의 결정이 필요하다.

인물이 달려와 멈추는 컷을 예로 들면 제1원화는 어느 발로 제동을 걸고, 상체가 얼마만큼 앞으로 쏠리며, 마지막에 어느 방향을 보는지를 정할 수 있다. 제2원화는 그 자세를 캐릭터 설정에 맞춰 구체화하고 손발과 의상, 겹침을 명료하게 만들며 동화가 중간 그림을 나눌 수 있도록 번호와 지시를 갖춘다.

야스히코가 감독과 콘티, 캐릭터 디자인도 함께 맡았다는 점은 제1원화에 작품의 연출과 형태 기준을 직접 연결했다. 콘티에서 정한 장면 목적을 개별 컷의 자세와 움직임으로 바꾸고,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그 행동을 어떻게 수행할지 앞에서 제시할 수 있었다. 작화감독 수정에서는 제출된 해석 가운데 승인할 것과 고칠 것을 골랐다면, 제1원화에서는 해석의 출발점을 먼저 제공했다.

제2원화는 베껴 그리는 일이 아니다

러프 원화를 완성하려면 선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많은 판단이 필요하다. 제1원화가 원과 축으로 잡은 얼굴을 실제 캐릭터의 각도와 표정으로 만들고, 몸의 덩어리를 의상 구조와 원근에 맞춰 구체화해야 한다. 앞뒤 자세에서 형태가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동화가 읽을 수 있도록 가려지는 선과 움직임 지시도 정리한다.

다만 제2원화가 운동을 처음부터 자유롭게 다시 설계하는 것은 이 체제의 기본 목적과 맞지 않는다. 제1원화에서 승인된 포즈와 동작의 축을 보존하면서 완성도를 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러프의 정보가 부족하거나 설정과 충돌하면 해석 범위가 커질 수 있지만, 그 예외가 두 단계의 기본 책임을 바꾸지는 않는다.

수정의 위치를 결과 뒤에서 제작 앞으로 옮기다

작화감독 수정과 제1원화는 둘 다 러프한 선으로 주요 자세를 바꿀 수 있다. 그림만 떼어 보면 비슷해 보일 수 있다. 차이는 그 그림이 들어온 시점과 다음 작업자다.

작화감독은 다른 원화가가 제출한 결과를 검사해 고치고, 제1원화는 다음 작업자가 완성할 운동의 원안을 앞에서 제공한다. 《크러셔 조》의 체제에서는 서로 다른 완성 원화를 뒤에서 맞추는 방식과 달리, 야스히코가 거의 전편의 운동을 앞단에서 배치했다. 통제의 위치가 원화 뒤에서 원화 안의 첫 단계로 이동한 것이다.

이 방식은 재작화를 없애지 않는다. 제1원화 자체가 연출 의도와 맞지 않으면 수정해야 하고, 제2원화가 러프를 잘못 해석하면 검사도 필요하다. 대신 장편 전체의 주요 운동이 완성되기 전에 같은 기준을 공유하므로, 완성 원화를 전면적으로 되돌릴 가능성을 줄인다.

얻은 것과 새로 생긴 병목

제1·제2원화 분업으로 야스히코는 장편의 자세와 운동을 넓게 통제하면서 완성 원화의 노동을 여러 작업자에게 나눌 수 있었다. 젊은 작화진은 빈 콘티에서 움직임을 모두 발명하는 대신 구체적인 러프를 받아 완성하는 과정에서 야스히코의 포즈와 운동을 읽었다. 생산과 교육이 같은 인계 안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동시에 거의 전편의 제1원화가 한 사람에게 모였으므로 새로운 병목도 생겼다. 야스히코의 러프가 늦으면 다수의 제2원화가 출발할 수 없다. 제1원화의 정보가 모호하면 뒤 단계의 해석과 수정이 늘어난다. 한 사람의 운동 기준을 강하게 유지하는 대신 그 사람의 선행 작업이 전체 일정의 입구가 됐다.

《크러셔 조》에서는 감독이자 작화감독인 야스히코가 장편의 운동 원안을 먼저 인계물로 만들고, 다른 원화가들이 이를 완성 원화로 전환하도록 공정을 나눴다. ‘실력 있는 사람이 어려운 그림을 먼저 그렸다’는 개인기보다 운동의 공통 기준을 완성 원화 앞에 배치했다는 생산 구조가 핵심이다. 《하이디》가 공간의 공통 기준을 원화와 미술 앞에 놓았다면, 《크러셔 조》는 운동의 공통 기준을 완성 원화 앞에 놓았다.

자료

- 선라이즈 월드 — 야스히코 요시카즈 인터뷰 — https://www.sunrise-world.net/feature/feature.php?id=7907 — 제한된 예산·일정과 소수 인원이라는 조건, 야스히코가 제1원화를 맡고 젊은 작화진이 제2원화로 완성한 방식, 거의 전편의 제1원화를 그렸다는 직접 증언을 확인할 수 있다.
- 선라이즈 월드 《크러셔 조》 공식 작품 정보 — https://www.sunrise-world.net/titles/pickup_068.php — 작품의 공개 연도와 야스히코의 감독·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콘티 등 주요 직책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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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 1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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