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의 전 컷 레이아웃은 개별 구도의 구성뿐 아니라 서로 다른 컷이 같은 공간을 연속해서 관찰하도록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두막 안의 탁자, 의자, 벽난로와 계단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면 카메라가 방향을 바꿔도 그 관계가 유지돼야 한다.
실사 촬영에서는 세트를 만들고 배우와 카메라를 그 안에 놓는다. 카메라가 움직이거나 반대편으로 이동해도 배우와 가구는 같은 장소에 남아 있다. 손으로 그리는 애니메이션에는 촬영 전에 존재하는 방도, 그 방을 실제로 보는 카메라도 없다. 컷마다 새 종이 위에 인물과 배경을 다시 그려야 한다. 레이아웃은 존재하지 않는 무대와 카메라를 그림으로 먼저 구성한다.
한 장의 구도보다 컷 사이의 공간
한 컷에서 하이디가 탁자 옆에 서 있고 다음 컷에서 할아버지를 바라본다고 하자. 두 컷을 각각 그럴듯하게 그리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두 번째 컷의 시선 방향, 뒤에 보이는 벽난로, 화면 밖에 남은 문이 첫 번째 컷의 공간과 맞지 않으면 관객은 방의 방향을 잃는다.
장면의 연속성은 모든 컷을 같은 각도에서 그려 얻는 것이 아니다. 보는 위치를 바꾸면서도 사물 사이의 관계가 유지될 때 생긴다. 첫 컷에서 인물이 화면 오른쪽을 향해 걸어 나갔다면 다음 컷의 진입 방향이 공간의 축과 맞아야 한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과 다음 컷의 산 풍경도 같은 방향 관계를 가져야 한다.
레이아웃은 각 컷의 프레임 밖에 있는 공간까지 전제로 삼는다. 종이에 그려진 것은 방의 일부지만, 문과 탁자와 창문이 놓인 전체 구조 안에서 그 일부를 잘라낸 것으로 설계한다. 이 전제가 여러 컷에 반복되면 관객은 화면에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한 장소를 머릿속에 만들 수 있다.
장면 설정을 보이지 않는 무대로 만들다
장면 설정은 오두막의 구조와 가구의 기본 위치, 집과 주변 지형의 관계를 정한다. 레이아웃은 그 설정을 개별 컷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대로 바꾼다. 어느 벽 앞에 인물을 세울 수 있는지, 문에서 탁자까지 몇 걸음을 걷는지, 계단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천장과 난간이 어떻게 겹치는지를 매 컷 계산한다.
히카와 류스케는 《하이디》의 오두막을 설명하면서 가구와 벽난로, 계단의 위치가 일관된 공간으로 설계되고, 미야자키가 머릿속에 카메라 위치를 두어 각 컷을 구성했다고 정리한다. 이때 장면 설정은 완성 배경의 목록이 아니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각도에서도 성립해야 하는 입체적인 관계다.
이 관계가 있으면 같은 장소를 넓은 전경, 인물 중심의 중경, 손이나 물건의 근접 화면으로 나누어도 컷들이 하나의 행동으로 연결된다. 반대로 설정이 정면도 몇 장에 머물고 각 컷이 독립적으로 배경을 만들면, 카메라가 돌아설 때마다 방의 크기와 가구의 거리가 달라질 수 있다.
컷마다 가상의 카메라를 놓다
레이아웃은 실제 렌즈를 사용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어디에서 어떤 방향으로 장면을 볼 것인지를 정한다는 점에서 촬영 설계의 기능을 맡는다. 카메라를 낮게 놓으면 인물과 산의 높이 관계가 달라지고, 멀리 물리면 인물의 행동보다 환경이 크게 보인다. 같은 행동도 문 가까이에서 보는지 방 전체가 들어오는 위치에서 보는지에 따라 장면에서 강조되는 정보가 달라진다.
레이아웃은 ‘카메라처럼 보이는 그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컷마다 관찰 위치를 일관된 무대 안에 놓는다. 첫 컷에서 방의 한쪽을 본 뒤 두 번째 컷에서 반대 방향을 볼 때는 카메라가 공간의 어느 지점으로 이동했는지를 가정한다. 그 위치에 따라 인물의 크기, 바닥선, 벽과 가구의 겹침이 함께 바뀐다.
오두막 전체의 구조를 장면 설정으로 정한 뒤 컷마다 카메라의 위치를 달리 가정해 레이아웃을 그렸다. 컷마다 관찰 각도는 달라도 문과 가구, 계단의 위치 관계는 같은 장소의 좌표를 따랐다.
실사의 촬영감독은 렌즈와 카메라를 통해 배우와 세트를 어떤 거리와 방향에서 기록할지 정한다. 《하이디》의 화면구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배우와 세트를 동시에 그리면서 그 관찰 위치까지 결정했다. 그래서 레이아웃 담당의 역할을 애니메이션의 카메라맨 또는 촬영감독에 비유할 수 있다.
인물의 움직임과 배경의 움직임을 맞추다
가상의 카메라는 고정 구도에만 필요하지 않다. 인물을 따라 팬을 하거나 이동하는 컷에서는 셀의 운동과 배경의 이동이 같은 공간 규칙을 가져야 한다. 인물이 일정한 속도로 비탈을 걷는데 배경의 간격 변화가 맞지 않으면 발이 미끄러지거나 장소의 크기가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레이아웃은 인물의 시작과 끝 위치, 카메라가 보여줄 범위, 이동 뒤 새로 드러날 배경을 함께 지정한다. 원화는 그 범위 안에서 자세와 타이밍을 만들고, 미술은 움직이는 프레임에 필요한 길이의 배경을 준비한다. 촬영은 지정된 이동을 합성한다. 세 부서가 같은 가상의 카메라를 공유할 때 셀과 배경이 하나의 장소 안에서 움직인다.
레이아웃이 원화와 미술의 공통 좌표가 되려면 관찰 위치와 컷 사이의 방향 관계까지 함께 유지돼야 한다. 공간을 승인한다는 것은 개별 컷의 배치뿐 아니라 그 배치들이 같은 장소의 연속된 관찰로 이어질 조건을 정한다는 뜻이다.
손으로 그린 카메라의 선택
레이아웃이 촬영감독의 기능을 맡는다고 해서 실사 카메라의 결과를 그대로 모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그린 화면은 장면의 목적에 따라 공간을 압축하거나 강조할 수 있다. 가까운 인물과 먼 배경의 관계를 실제 투시보다 읽기 쉽게 조절하고, 좁은 실내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 거리를 완화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변형도 컷마다 무관하게 일어나면 공간의 연속성을 깨뜨린다. 어느 관계를 유지하고 어느 부분을 과장할 것인지 화면구성 단계에서 통제해야 한다. 미야자키의 전 컷 레이아웃은 같은 사람이 각 컷의 관찰 위치와 변형을 이어 판단했다는 점에서 강한 연속성을 얻었다.
《하이디》에서 레이아웃은 배경과 인물을 한 장에 배치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대를 세우고, 매 컷 그 안에 가상의 카메라를 놓으며, 인물의 행동과 배경을 연속된 관찰로 연결했다. 전 컷 화면구성이 연결한 것은 개별 컷의 구도뿐 아니라 서로 다른 관찰 위치에서 유지되는 하나의 공간이었다.
자료
- 애니메이션핵 「히카와 류스케의 애니메이션 중층 분석」 — https://anime.eiga.com/news/column/hikawa_rekishi/106221/ — 《하이디》 오두막의 일관된 공간 설정, 컷마다 가정된 카메라 위치, 촬영감독에 준하는 레이아웃 기능에 관한 분석을 확인할 수 있다.
- 네리마 애니메이션 사이트 — 다카하타 이사오 제17회 — https://animation-nerima.jp/enjoy/kyojin/vol17/ — 레이아웃이 배경과 캐릭터의 위치·움직임을 정하고 《하이디》에서 본격적 체제로 운용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 지브리 미술관 「레이아웃과 애니메이션 표현」 강좌 안내 — https://www.ghibli-museum.jp/news/014033/ — 전 화·전 컷 레이아웃이 《하이디》의 화면구성에 수행한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