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와 동화가가 별도 작업자로 처음 분리된 시점은 1923년 전후다. 미국의 인크웰 스튜디오, 이후 플라이셔 스튜디오가 된 제작 현장에서 딕 휴머는 움직임의 주요 자세를 그리고 아트 데이비스는 그 사이의 그림을 채웠다.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공식 역사 인터뷰는 데이비스를 애니메이션 업계 최초의 공식적인 인비트위너로 설명한다.
일본에서는 늦어도 1941년 《아리짱》에서 작화와 동화가 별도 크레딧으로 구분돼 있었다. 1958년 《백사전》이 원화와 동화를 처음 나눈 작품은 아니다. 《백사전》의 중요성은 이미 존재하던 분업을 원화 2명과 동화 42명이 참여하는 장편 생산 체제로 확대한 데 있다.
세 연도는 서로 다른 기준을 가리킨다. 1923년 전후는 주요 자세와 중간 그림이 별도 작업자에게 배정된 시점이다. 1941년은 일본 작품의 크레딧에서 두 책임이 문서로 확인되는 시점이다. 1958년은 그 구분이 대규모 장편 제작의 조직 원리가 된 시점이다.
모든 그림을 그리던 애니메이터
초기 애니메이터는 한 장면에 필요한 주요 자세와 중간 자세를 함께 그렸다. 인물이 의자에서 일어나 문까지 걷는다면 앉은 자세, 몸을 들어 올리는 과정, 첫발을 내딛는 순간, 걷는 사이의 자세까지 한 사람이 처리했다. 동작을 계획하는 판단과 화면에 필요한 수십 장을 완성하는 노동이 한 손에 들어 있었다.
이 방식에서는 작업 의도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필요가 적다. 어느 자세가 핵심인지, 팔과 몸통 가운데 무엇이 먼저 움직이는지, 어느 구간을 빠르게 통과할지 작업자가 알고 있다. 대신 한 장면의 그림을 모두 완성하는 동안 다음 장면의 설계는 시작하기 어렵다. 상업 작품을 반복해서 공급하려면 움직임을 정하는 노동과 이미 정해진 운동을 다량의 그림으로 전개하는 노동을 나눌 필요가 생긴다.
플라이셔의 분업은 이 지점을 잘랐다. 애니메이터는 여섯 장이나 여덟 장의 주요 자세를 그리고, 그 사이 그림이 절반·4분의 1·3분의 1 가운데 어디에 놓일지 여백에 표시했다. 인비트위너는 그 지시에 따라 필요한 자세를 만들었다. 애니메이터가 모든 그림을 직접 완성하지 않고도 더 많은 장면의 운동을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요 자세가 인계물이 되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릴 때 주요 자세는 개인 작업의 중간 상태다. 다른 사람이 이어 그리면 같은 그림이 인계물로 바뀐다. 뒷사람은 앞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동작을 보지 못한다. 주요 자세와 함께 그림 번호, 간격, 궤적, 타이밍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두 자세 사이에 몇 장을 넣을 것인지, 중간 그림을 정확히 절반에 놓을 것인지 한쪽에 치우치게 놓을 것인지에 따라 같은 포즈도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손과 몸통이 동시에 이동하는지, 손이 먼저 출발하고 몸이 따라오는지도 표시해야 한다. 분업은 사람을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의 판단을 다음 작업자가 반복할 수 있는 정보로 바꿔야 한다.
이때부터 주요 자세와 중간 그림은 서로 다른 실패를 맡는다. 주요 자세와 타이밍이 잘못되면 동화가 정확해도 운동의 방향은 성립하지 않는다. 주요 자세가 적절해도 중간 그림에서 부피가 흔들리거나 궤적이 끊기면 화면의 운동이 무너진다. 두 작업은 같은 캐릭터를 그리지만 검사해야 할 항목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1941년에 분리돼 있었다
일본에서 작화와 동화가 별도 크레딧으로 확인되는 시점은 늦어도 1941년이다. 세오 미쓰요가 감독과 작화를 맡은 단편 《아리짱》에는 모치나가 다다히토가 ‘동화’로 따로 기록돼 있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장면의 주요 작화를 맡은 사람과 이를 연속된 운동으로 만드는 사람이 제작상 구분됐다.
전쟁 전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국의 대형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작았고, 작품마다 한 직책이 포괄하는 범위도 달랐다. 《아리짱》의 작화와 동화를 오늘날 TV 애니메이션의 원화·동화 공정표와 그대로 대응시킬 수는 없다. 다만 《백사전》보다 17년 앞서 주요 작화와 동화를 다른 사람에게 배정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백사전》이 바꾼 것은 규모다
1958년 도에이동화의 《백사전》에서는 다이쿠바라 아키라와 모리 야스지가 원화를 맡고, 대부분 경력 1년 미만인 42명이 동화에 참여했다. 제작 기록에는 약 7개월 동안 원화 1만 6474장과 동화 6만 5213장이 집계돼 있다. 두 사람이 만든 운동의 기준을 수십 명이 나누어 실행한 장편 생산이었다.
규모가 커지면 직무 구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원화가 어떤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지, 원화의 러프한 선을 누가 정리하는지, 단순한 중간 그림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자세를 누가 보충하는지 정해야 한다. 두 원화가의 판단을 42명이 곧바로 동일하게 읽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원화와 동화 사이의 해석 차이가 생산량만큼 확대된다.
《백사전》은 원화와 동화의 최초 분리 사례가 아니라, 그 분리를 장편 제작의 조직 규칙으로 운용하면서 두 단계 사이에 남은 업무를 드러낸 작품이다. 이 중간 업무는 세컨드 여섯 명에게 배정됐다.
주요 자세와 중간 그림을 각기 다른 작업자가 맡으면서 주요 자세는 개인의 밑그림에서 다른 사람이 읽어야 할 생산 문서로 바뀌었다. 《백사전》처럼 많은 작업자가 연결될수록 러프의 해석을 정리하고 어려운 중간 자세를 보충하는 작업이 필요해졌다.
자료
- Fleischer Studios — Ray Pointer 인터뷰 — https://fleischerstudios.com/ray — 딕 휴머가 주요 자세를 그리고 아트 데이비스가 최초의 공식적인 인비트위너로 배치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 Mark Langer, 「Institutional Power and the Fleischer Studios」 — https://www.jstor.org/stable/1224976 — 인비트위너라는 직무 범주가 1923년 이후 인크웰 스튜디오에서 성립한 것으로 정리한 연구다.
- 교토국립근대미술관 — 《아리짱》 상영 자료 — https://www.momak.go.jp/Japanese/films/2011/momakFilmsAthome5.html — 1941년 작품의 ‘감독·작화 세오 미쓰요 / 동화 모치나가 다다히토’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 지브리 미술관·도쿠마 기념 애니메이션 문화재단 《연보 2024–2025》 PDF — https://www.ghibli-museum.jp/docs/nennpou2024-2025.pdf — 《백사전》의 제작 인원, 기간, 원화·동화 매수를 확인할 수 있다.
- 도에이 애니메이션 《백사전》 공식 스태프 — https://lineup.toei-anim.co.jp/ja/movie/movie_hakujaden/staff/ — 다이쿠바라 아키라·모리 야스지의 원화 크레딧과 동화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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