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000012 · 일본작화문화사 / 10

사쿠가는 어떻게 하나의 문화가 되었는가

독서 기록 불러오는 중…

영어권의 사쿠가 문화는 일본어 자료를 그대로 번역하는 방식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떤 제작자를 먼저 소개하고 어느 영상을 대표 사례로 붙였는지가 새로운 입문 경로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이미 유명한 제작자라도 번역된 기사와 팬 영상이 없으면 늦게 알려질 수 있었고, 특정 영상이 널리 공유된 제작자는 다른 지역에서 먼저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더 캐니파 이펙트의 2015년 해설 영상은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세준을 ‘현대 메카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는 식으로 소개했다. 스티비 수안의 2018년 연구는 이 영상과 애니메이터별 MAD, 영어권 인터뷰를 함께 검토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영어권 팬이 일본인 제작자만이 아니라 한국인 애니메이터의 이름을 독립적인 관람 이유로 접한 사례다.

김세준의 이름을 따라가면 작품의 생산국과 제작자의 국적, 팬이 사용하는 언어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움직인다. 일본에서 제작된 작품을 영어권 팬이 보고, 그 안에서 한국인 애니메이터를 발견한 뒤 다른 일본 작품으로 다시 이동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본다는 말만으로 실제 제작자의 이동과 팬의 정보망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바히 JD의 2012년 인터뷰는 제작 과정에서도 비슷한 이동을 보여 준다. 그는 빈에 살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했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주고받았으며, 자신의 웹사이트에 작업을 공개했다. 팬이 해외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네트워크와 제작자가 해외에서 일본의 상업 제작에 참여하는 네트워크가 같은 시기에 겹치고 있었다.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사쿠가’라는 말도 일본어의 ‘작화’와 정확히 같은 범위를 가리키지 않는다. 수안은 눈여겨볼 만한 애니메이션 장면과 그 제작자를 찾아 이야기하는 팬 관행을 중심으로 이 용법을 설명한다. 제작 공정의 한 용어가 다른 언어로 그대로 옮겨졌다기보다 특정 장면을 고르고 사람의 이름을 붙여 공유하는 감상법과 함께 의미가 달라졌다.

2013년의 영어권 팬 블로그에서는 작품 전체의 추천과 별도로 회차와 오프닝, 엔딩, 특정 장면, 제작자의 작업이 골라져 관련 영상과 연결됐다. 일본어 잡지를 직접 구하지 않은 독자도 한 페이지에서 이름과 화면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로마자로 적힌 제작자의 이름과 함께 제시된 영상이 다음 검색의 출발점이 됐다.

같은 시기의 애니메이션을 보더라도 언어권마다 먼저 만나는 이름은 달랐다. 번역된 기사와 팬 영상, 검색 가능한 로마자 표기, 영어 인터뷰가 어떤 제작자를 눈에 띄게 만드는지를 결정했다. 일본어권에서 형성된 인물 목록이 그대로 확대된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소개 순서와 대표 장면이 생겼다.

이런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 서술의 차이로 이어진다. 어느 시기에 누구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고 어떤 장면이 대표 사례로 반복됐는지는 팬이 만든 잡지와 회지, MAD, 위키, 데이터베이스에 서로 다른 형태로 남았다. 제작자의 경력만이 아니라 제작자를 어떻게 발견하고 기억했는지도 정리할 수 있는 자료가 쌓였다.

2023년 8월 21일 발매가 공지된 『작화 마니아가 말하는 애니메이션 작화사 2000~2019』는 A5판 144쪽의 책이다. 바탕에는 2020년 6월과 7월에 쿠츠나 켄이치가 말하고 오구로 유이치로가 질문한 온라인 토크가 있었다. 편집부는 발언을 덜어내고 내용을 추가했으며 보충을 위한 새 대화도 수록했다고 설명한다. 흘러가던 대화가 목차와 연대를 가진 역사 서술로 바뀌었다.

온라인 토크에서는 먼저 떠오른 인물에서 다른 작품으로 이야기가 움직일 수 있다. 책은 발언을 항목으로 나누고 설명을 보충하면서 2000년부터 2019년까지의 흐름을 다시 배열했다. 같은 대화라도 책이 되는 순간 어떤 제작자와 작품을 한 시기의 대표 사례로 둘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출판 안내는 책의 내용이 두 사람의 견해와 가치관에 따른 것이며 뛰어난 작품과 제작자를 모두 다룬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한 권의 작화사는 완성된 명단이 아니라 특정한 시점에서 선택된 사례의 배열이다. 이후 새로운 담당 증언이나 제작자료가 나오면 이미 적힌 이름과 평가도 다시 읽힌다.

팬의 메모에는 당시의 인상이 남고, 잡지 특집에는 편집부가 고른 인물과 작품이 남는다. 위키의 수정 로그는 정보가 바뀐 순서를 기록하고, 제작자의 뒤늦은 증언은 제작 현장에서 기억하는 공정을 전한다. 같은 장면이라도 자료가 만들어진 시점과 목적이 다르면 말할 수 있는 내용도 달라진다.

최종적인 담당표만 남기면 이름이 만들어진 과정은 사라진다. 방송 중에는 다른 사람의 작업으로 추정됐던 장면이 제작자의 발언과 제작자료를 거치며 수정될 수 있다. 잘못된 귀속은 고쳐야 하지만, 당시 왜 특정 이름이 떠올랐는지는 그 시대의 팬이 작풍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으로 남는다.

2020년의 토크가 2023년의 책으로 바뀐 사건은 팬이 제작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사례다. 어떤 장면을 중요하게 보았고 어떤 제작자를 한 시대의 중심에 놓았는지까지 서술의 대상이 됐다. 작화 감상의 역사가 제작자의 연보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시점의 대화는 책이 되고, 그 책은 다음 독자가 다른 장면과 이름을 찾는 자료가 된다. 작화문화사는 화면을 만든 사람의 목록만 다루지 않는다. 장면을 골라 보고, 이름을 붙이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잘못된 판단을 고쳐 온 감상의 기록까지 함께 다룬다.

자료

영어권 사쿠가와 초국적 제작 연구
스티비 수안, 「생산을 소비하기: 『시로바코』와 사쿠가 팬 활동에서 본 애니메이션의 초국적 층위와 행위성의 분산」, 2018년.
https://doi.org/10.3390/arts7030027
https://pdfs.semanticscholar.org/7e2f/aff3356f6dfe8e4c5ca6e9b595de7e565773.pdf
https://www.youtube.com/watch?v=zekjRSjFdKM
https://blog.sakugabooru.com/2017/09/07/interview-with-sejoon-kim/

2013년 영어권 팬들의 동시대 기록
크레이커2K가 게시한 다수 필자의 2013년 사쿠가 회고 글.
https://vanishingtrooper.wordpress.com/2013/12/31/a-look-at-the-sakuga-and-animation-of-2013/

바히 JD의 작업 환경 인터뷰
2012년 9월 18일 공개 인터뷰.
https://usesthis.com/interviews/bahi.jd/

작화사 토크의 출판 안내
아니메스타일 편집부, 『작화 마니아가 말하는 애니메이션 작화사 2000~2019』 발매 안내, 2023년 8월 4일.
https://animestyle.jp/news/2023/08/04/24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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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 4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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